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스몬 왕조 (문단 편집) === [[아리스토불로스 1세]]와 [[알렉산드로스 야나이]], [[살로메 알렉산드라]]의 치세 === 요한 히르카노스가 31년의 통치를 마치고 기원전 104년에 사망하자 그의 뒤를 이어 아들인 [[아리스토불로스 1세]]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아리스토불로스는 잔인한 데다가 유대교 전통보다는 헬레니즘을 더 좋아해서 백성들의 지탄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후계자로 지명될 뻔했던 자신의 어머니를 감옥에 가두는가 하면(!) 동생 안티고누스는 모함인 줄 알면서도 죽였고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던 동생 알렉산드로스 야나이도 감옥에 가두었다. 그러나 아리스토불로스는 불과 1년 만에 병으로 사망했고 아들이 없어서 왕위는 그의 아내인 살로메 알렉산드라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알렉산드라는 가장 먼저 감옥에 있던 [[알렉산드로스 야나이]]를 석방시키고 14살 연하인 그와 결혼한다.[* 유태인들은 형사취수 풍습이 있으니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약 100년 후인 신약 성경 시대에서 사두개인과 예수가 형사취수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그를 왕으로 세워 알렉산드로스 야나이의 치세가 시작되었다. ||<-2> [[파일:1280px-1stMithritadicwar89BC.svg.png|width=100%]] || || ||기원전 89년 하스몬 왕조의 최대 강역 || 알렉산드로스 야나이는 [[갈릴래아]]와 요르단강 동편 중부등을 점령해 하스몬 왕조 최대판도를 개척했으며 이때에 이르러 하스몬 왕조의 왕들은 왕으로 칭하고 왕관을 쓰는 등 명실상부한 독립왕조임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요한에게 축출되었던 하시딤들이 바리사이파[* 예수와 관련된 일화만 보면 사두카이와 바리사이가 어떻게 달랐는지를 알 수 없는데, 그들이 당시 취했던 피상적인 몇가지 주장만으로 단순히 구분하자면 바리사이쪽은 유대민족의 정체성과 원리원칙에 보다 충실한 근본주의자, 사두카이는 헬레니즘 문화와 셀레우코스 세력에 비교적 우호적인 현실주의자 내지는 수정주의자에 해당했다.][* 다만 신약성경을 보면 바리사이파는 영혼과 천사 및 부활을 믿는데, 사두카이파는 그런 것들을 믿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예수는 바리사이파를 가리켜 위선자라고 줄곧 비판하는 한편, 사두카이파에 대해서 비판하는 장면는 상대적으로 적게 나온다. 물론 누가복음 20장 27절 이후 내용처럼 직접 논박을 하는 장면은 나오지만, 사두카이파의 기반은 아예 비판할 가치가 있는 신학적 이론이 빈약한 세속주의에 가깝기 때문에 그런 점을 감안할 수 있다. 예수와 바리사이 운동 가운데는 생각보다 공통점이 많기 때문에 그만큼 얽힐 일도 많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성서를 보면 예수와 바리사이의 관계는 서로 비판하기도 하지만, 같이 식사를 하기도 하고, 바리사이가 헤로데 안티파스에게서 예수를 피신시키는 등 단순히 원수지간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점이 많다. 또한 온건 바리사이파는 이후 상당수가 초기 그리스도교 운동에 가담하기도 하였다.]가 되어서 야나이에게도 대사제장을 내놓을 것을 주장했고 결국 초막절 제사때 바리사이파가 주동이 되어 제사를 지내러 대신전으로 올라가는 야나이에게 열매를 던지면서 시위를 벌이는 사태가 벌어졌다. 열이 뻗친 야나이는 자신에게 반발한 바리사이파 6000명을 학살했다. 또한 어떤 때에는 바리사이파들이 개최한 연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800명을 기둥에 못박아 처형했으며 8000명의 바리사이파들이 예루살렘에서 도피하여 유대광야로 나갔는데 이들이 나중에 엣세네파가 된다. 이렇게 율법을 무시하고 독재를 일삼아 백성들에게 비난을 받은 야나이는 27년간 통치하다가 일사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의 뒤를 이어 다시 부인 [[살로메 알렉산드라]]가 통치자가 되었다. 살로메 알렉산드라는 야나이와는 달리 율법에 충실하고자 노력해 백성들의 지지를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알렉산드라는 추방된 바리사이파들과 화해하고 그들을 중용했으며, 이후 사두카이파들이 추방되고 바리사이파들이 득세하기 시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